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문단 편집) === 전반: 프로이센 vs. 나폴레옹 3세 ===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560px-FrancoPrussianWarFrontierJuly1870.jpg|width=400]]|| || [[1870년]] [[7월 31일]] [[독일]]과 [[프랑스]]의 국경 || 먼저 전쟁을 선포했음에도 멕시코 내전 개입 등으로 정신이 없었던 데다 대규모 전쟁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프랑스는 개전 1달여 동안 국경 지대의 요새도 돌파하지 못하고 쩔쩔매고 있었다. 반면 4년 전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으로 실전 경험까지 쌓은 프로이센의 육군 참모부는 대규모 상비군의 [[http://ch.yes24.com/Article/View/18964|철도를 이용한 신속한 동원]], 효율적인 참모체계로 프랑스보다 동원이 빨랐다.[* 그리고 당시 독일군 병사들은 나폴레옹, 이전의 30년 전쟁부터 독일을 유린해 온 프랑스에 대한 복수심으로 인해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고 한다.] 프랑스 육군은 병력 소집도 안 된 상태에서 독일의 국경 지역인 [[자르브뤼켄]]을 200,000명으로 공격했지만 '''프로이센 육군은 이미 [[라인 강]] 서안에 385,000명이나 집결'''되어 있었고 3주안에 3개 군단이 증원될 예정이었다. ||[[파일:external/cdn-7.historyguy.com/Franco-Prussian-War.jpg|width=400]]|| || 8월 16일-18일에 있었던 마르스 라 투르 전투[* 그림의 제목은 불의 전선으로(The Line of Fire)으로 제작자는 스위스의 화가 피에르 조르주 잔니오(Pierre-Georges Jeanniot, 1848 ~ 1934)가 1886년 38세때 자기 경험으로 바탕으로 그린 전쟁화다.] || 결국 역으로 프랑스의 국경 요새 일부가 [[프로이센군]]에게 함락되었고, 쫓겨난 [[프랑스군]] 13만 명이 거꾸로 메츠 요새에 포위되었다. 이에 프랑스 육군은 메츠 요새 구원을 위해 대규모 작전을 전개, 각지에서 프로이센군을 격파하여 진격했으나 이건 이미 대규모로 결집한 적군 사이로 아군을 축차 투입하는 삽질이었고 몰아내기는커녕 생각보다 많은 적군을 보자 변변한 전투도 치르지 못하고 박살이 나서 쫓기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